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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사물의 이치가, 지금 우리는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여야지 몸이 없다는 다른 개념을 만들어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마하라지: 그 근원으로 나아가십시오. 몸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압니까? 몸이 생겨나기 이전에 뭔가가 있습니다.

 

 

질문자: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이 “내가 있다”는 느낌을 소멸하는데 있어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 노력도 필름의 일부입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울인다고 생각하는 노력이 아무 효과가 없고, 그냥 전부가 필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까?

 

 

마하라지: 의식 이면의 빛인 그 근원 안에 있으십시오. 그대는 의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이해하십시오.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저 물라-마야 안에 있습니다. 카세트가 제가 하는 말을 녹음하고 있지만, 카세트 안에 기록되는 어떤 말도 제가 아닙니다. 원래의 음성은 카세트 안에 담겨 있지 않듯이, 그대도 그 화물化物, 몸, ‘내가 있음’, 의식과 별개입니다.

 

 

질문자: 깨달음은 그 필름 안에 있습니까?

 

 

마하라지: 그것은 필름 안에 있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그대가 그 필름을 아는 자니까요. 이제 그대가 들은 모든 이야기를 숙고해 보고 5시에 다시 오십시오. 저 마음은 현상계 안에 존재하는 생각들이 축적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대의 모든 활동은 마음에 의존해 있고, 마음은 그대의 모든 기억과 그대가 이 세상에서 들은 모든 이야기에 의존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은 뭐든지 흡수하고, 또 그것을 우리 나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우리 자신의 개념들을 그런 것들에 부가합니다. 그런데 이 몸-마음 의식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흡수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내가 있다” 의식이 전생, 탄생, 업業 등의 원인이라고 계속 생각합니다. 그대는 어떤 것을 좋다, 훌륭하다고 받아들이고 다른 것을 나쁘다, 죄가 된다고 배척하지만, 그런 것은 그대가 세상에서 얻은 개념일 뿐, 그런 분별에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출처 - 의식을 넘어서 (탐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