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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담마파다 2.방일하지 않음의 품[Appamanavagga] Kalachakra Mandala : '깔라짜끄라(Kalachakra)'란 범어로 '시간의 바퀴(時輪)'의 뜻을 지니는데 그것은 우주의 매우 미세한 세계의 순환으로부터 삼라만상의 내적 및 외적인 순환을 포함한 거대한 온 법계의 운행을 뜻하는 것이다. manda : 마음의 창 또는 본질 -la : 소유 또는 성취.
1.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니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며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
2.
이러한 이치 상세히 알아서
슬기로운 님은 방일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음에 기뻐하고
고귀한 님의 행경을 즐긴다.
3.
선정에 들고 인내하고
언제나 확고하게 노력하는 님
현명한 님은 열반,
위없는 안온을 경험한다.
4.
힘써 노력하고 새김을 갖추고
행실이 맑고 행동이 신중하고
자제하고 여법하게 사는
방일하지 않은 님에게 명성이 더해간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죽은것 처럼 잠잔다.
그러나 깨어 있는 스승은 영원히 산다.
인간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잠들어있다.
붓다들의 정의는 다르다. 삶에 대한 그들의 정의는 의식으로 귀결된다.
그들은 호흡과 형액 순환을 삶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식이 깨어있어야만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의식의 각성을 이룬 사람을 제외하곤 아무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수 없다.
그대는 시체이다. 걷고, 말하고, 행동하는 시체이다. 그대는 로보트에 불과하다.
그대는 잠속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계속 비틀거리고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그대는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한다. 그리고 하지 않기로 결정한 일을 계속한다.
그대는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일을 하고,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자신이 깨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을 버려라.
"나는 깨어있다." 는 생각을 버리는 것, 이것은 위대한 도약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버리는 즉시, 그대는 진정으로 깨어 있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성은 영원하다.
그것은 죽음을 모른다. 오직 비각성만이 죽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무의식적 상태에 남아있다면, 쿨쿨 잠자고 있다면 또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대는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는 더 높은 의식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는 투명하다.
그대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라. 마음속에 지나가는 모든 사념을 주시하라.
그대를 사로잡고있는 모든 욕망을 주시하라.
걷고, 말하고, 먹고, 목욕하고, 작은 몸짓 하나까지 주시하라.
주시할때 명확성이 생긴다. 그리고 재잘거리던 마음이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재잘거리는데 쓰이던 에너지가 주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서서히 생각은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이 죽기 시작할 때, 명확성이 떠오른다.
이제 그대의 마음은 투명한 거울이된다.
시야가 투명해질 때 지복이 온다. 혼란된 시각은 불행의 뿌리이다.
그리고 명확성은 지복의 기초이다.
깨어 있음이 삶이라는 것을 아므로!
그는 얼마나 행복한가,
깨달은 자의 길을 가므로!
'깨어있음'은 결코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이 온다해도 그는 죽음을 또한 주시할 것이다. 그는 주시하면서 죽을 것이다.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시는 영원히 남는다.
그것은 우주의 일부, 우주의식의 일부가 될 것이다.
알 힐라즈 만수르는 이렇게 외쳤다
"아날 하크 Ana'l Haq! - 나는 진리이다!"
그대 또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것은 타고난 권리이다.
명상한다,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며.
부분적인 노력은 공허하다.
의식의 변형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은 100℃로 펄펄 끓어야 증발할 수 있다. 그때엔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대는 위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불굴의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
게으름은 잠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불굴의 끈기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대는 자꾸 미끌어질 것이다.
그대는 자꾸 주시를 잊을 것이다.
그대는 술 취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미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미끌어진 것을 아는 순간에는 즉시 주시를 기억하라
그대의 에너지를 다시 거기에 쏟아라. 멍청하게 잠자고 있지 말라. 취한 상태에 머물지 말라.
명상은 주시를 의미한다. 명상하라.
그러면 자유와 행복을 얻을 것이다.
매사에 주의 깊게 행동하라.
도의 길을 가라.
그러면 그대 안에 빛이 자랄 것이니.
더 침묵하고 주시하라.
더 명상적이 되라.
그러면 빛은 제 스스로 그대를 찾아온다.
그대는 아무 데로도 갈 필요가 없다.
스승은 자신을 섬으로 만든다.
홍수가 덮쳐도 그 섬을 휩쓸어가지 못하리라.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어떤 탐욕과 분노도 그 성을 함락할 수 없다.
그 섬과 더불어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통합된 개체가 된다.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인간이된다.
오늘날에는 이 '인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새로운 인간, ㅡ호모 노부스 homo novus....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주의 깊음을 잘 보존한다.
그것이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붓다에 의하면, 무의식적으로 살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인간, 잠에 빠져 몽유병처럼 살아가는 인간은 어리석다.
무의식, 비각성, 주의 깊지 못함, 이 단어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에 대한 붓다의 정의이다.
어리석은 자는 바람에 따라 표류하는 통나무처럼 산다. 그는 다만 우연에 의해 산다.
그는 무작정 군중을 따르고 군중 심리에 휩쓸린다. 그는 독립적인 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지성도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의 뒤를 쫓아간다.
그는 부모, 선생, 성직자, 정치가 등 주변 사람들의 온갖 충고를 따른다.
그는 안전하게 한 곳에 정체되어 부패해간다. 그대는 그를 군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그는 양과 같다.
붓다는 이런자를 어리석다고 말한다. 어리석은 자도 유식해질 수 있다.
사실, 어리석은 자는 대개의 경우 유식하다. 그는 신학자, 학자, 훌륭한 교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는 방법이다. 표면에 지식을 모음으로써 그는 중심에 있는 무지를 감춘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매우 유식하면서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지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부류는, 유식하지 않지만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지에 대한 앎을 갖고 있다.
붓다 자신이 유식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예수도 그렇고 모하메드도 그렇다. 그들은 순진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과 단순성을 갖고 내면의 핵심으로 뚫고 들어갈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리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존재의 핵심에 도달했다.
그들은 안다. 하지만 유식하지는 않다. 그들의 앎은 경전에서 온 것이 아니다.
주의 깊은 의식을 통해 얻은 앎이다. 진정한 앎은 명상을 통해 온다.
각성, 주의 깊음, 주시, 의식, 이런 특성을 통해 진정한 앎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실치 못한 지식은 경전을 통해 온다.
그대는 매우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지식을 자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유식한 바보! 아무리 유식해도 어리석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대는 음식을 먹지만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그대는 아내와 성관계를 갖지만 아내의 얼굴을 보지도 않는다. 그대는 매우 무감각하다.
아무 의미없는 몸짓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대가 주의 깊은 의식을 갖지않는 한 그 몸짓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어떤것을 소중하고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각성의 빛이다.그때엔 사소한 일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흔한 조약돌도 주의깊은 의식과 민감한 감수성, 사랑을 가진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소중한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를 만지면 그 다이아몬드는 평범한 돌이 되어버린다.
그대의 삶은 의식이 각성된 만큼만 깊이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는 명상한다.
그 끊이지 않는 명상의 힘으로
그는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다.
욕망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 을 의미한다.
욕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어디론가 달려간다는 뜻이다. 욕망은 현재로 부터 도망치는 수많은 방법을 의미한다.
붓다의 어법에서 욕망은 마음과 동의어이다.
욕망은 곧 마음이다.
욕망은 또한 시간이다. 이렇게 말할때 나는 시계의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시간은 심리적인 시간이다.
그대는 마음속에 어떻게 미래를 창조하는가? 그것은 욕망에 의해서이다.
그대는 내일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일을 창조한다.
사람들은 항상 다가올 시간, 다가올 생을 창조한다. 그들은 사후에 할 일에 대해서까지 생각한다.
그들은 사후의 삶까지 준비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종교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종교적이지 않다.
욕망은 그대를 지금 여기에서 먼 곳으로 데려간다. 지금 여기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인데 말이다.
그는 결코 욕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결코 미래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현재에 산다.
미래에 사는 것은 거짓된 삶, 가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대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행의 변장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락이나 쾌락일 뿐이다. 그것은 순간적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것이 될 수 없다.
진리는 하나의 특질을 갖는데, 그것은 영원성이라는 특질이다.
만일 어떤것이 진리라면 그것은 영원하다. 그리고 진리가 아닌 것은 순간적이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이 완전히 작용을 멈추어야만 발견된다.
그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대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 넘쳐 흐르기 시작하고 그대는 지복의 샘이 된다.
그는 지혜의 탑에 올라
슬픔에 잠긴 중생을
평온하게 내려다본다.
마치 산 위에 오른자가
산 아래 사람들을 내려다보듯이.
그느 여전히 세속에 살 것 이지만 그의 영혼은 높이 비상한다.
그는 빛나는 정상에 올라 어두운 계곡에서 슬픈 삶을 살고 있는 군중을 내려다본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싸우고, 야망, 탐욕, 분노, 폭력으로 가득찬 사람들...좋은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
그의 존재에 커다란 자비가 솟아난다.
그의 모든 열정은 평온을 거쳐서 자비가 된다. 열정은 다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비도덕적인 행위이다.
어떤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그를 착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부인을 이용하고 부인은 남편을 이용한다. 자식은 부모를 이용하고 부모는 자식을 이용한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마음의 계략이다. 이런 사랑은 실로 메스껍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탐욕이며 욕정이다.
명상을 시작할 때, 그대는 평정이라는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다.
사랑이 사라지고 그대는 중립 단계에 들어간다.
그렇게 열정은 중립 단계로 들어가 평정이된다. 사랑이 사라진다.
붓다를 향해 가는 사람은 그 중간에 너무나 냉정해진다.
그리고 세 번재 단계가 있다. 붓다가 되었을 때, 그는 마르지 않는 지복의 샘물을 발견한다.
아이스 담모 사난따노 Ais dhammo sanantano...영원한 진리를 발견했을때, 그는 넘쳐흐르기 시작한다.
다시 사랑이 돌아온다. 난생 처음 진정한 사랑이 일어난다. 그 사랑은 자비이다.
이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의 비를 뿌린다. 그는 다가오는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지복과 통찰력을 나누어 준다.
다른 자들이 꿈꾸는 동안에 깨어 있는 사람은
앞으로 질주한다.
둔마를 뒤로 하고
달리는 준마처럼.
그대는 더 이상 잠과 꿈의 희생자가 아니다.
그대는 잠자는 동안에도 깨어있다.
그 다음에 그대의 삶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표적을 향해 곧장 날아가는 화살이 된다.
그대는 최초로 '존재'가 된다.
붓다는 깨어있다. 그는 잠자는 동안에도 꿈꾸지 않는다.
욕망이 사라지면 꿈 또한 사라진다. 꿈은 욕망이 잠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붓다는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잔다.
그의 내면에는 밝은 빛이 계속 타오르고 있다. 육체는 휴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잠잔다.
그러나 그는 휴식이 필요없다. 그의 에너지는 무궁무진하다. 그이 존재의 중심에는 작은 불빛이 계속 따오른다.
주변이 온통 깊은 잠에 빠져도 그 불빛은 언제나 깨어있다.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에도 잠잔다. 그러나 붓다는 잠자는 동안에도 깨어있다.
인드라 Indra는 신 중의 왕이 되었다.
깊은 주의력은 얼마나 훌륭한가.
그리고 잠자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념의 변덕을 조심하는 수행자는
경계의 불꽃으로
모든 장애를 태워 없앤다.
명상의 불꽃은 그대의 사념과 욕망, 기억을 태운다. 그대의 과거와 미래를 태우고 마음과 에고를 태운다.
명상은 그대가 '그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 을 빼앗아간다.
명상은 죽음인 동시에 환생이다. 십자가인 동시에 부활이다.
그대는 새로 태어난다.
그대는 기존의 동일시를 완전히 잃고 삶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획득한다.
그 삶의 비전이 신, 담마, 도, 로고스 의 의미이다.
그대는 그것을 마음대로 이름 붙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에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표현 불가능하다.
오직 암시할 수 있을 뿐이다.
혼란을 조심하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나니,
그는 니르바나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수많은 생각이 그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대가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다.
그대는 어느 정도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럴 뿐이다. 깊은 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그대에게 매달린다. 그것은 엄청난 혼란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음이 곧 혼란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과 동일시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주시함으로 해서 그대의 에너지는 서서히 마음에서 철수할 것이다.
일단 마음이 죽으면 그대가 태어난다. 무심으로서의 그대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 탄생이 깨달음이다.
그 탄생은 그대에게 평화의 땅을 연꽃의 낙원을 가져다 준다.
그렇지 않는 한 그대는 지옥에 남을 것이다. 지금 그대는 지옥에 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결단을 내린다면, 의식을 선택한다면 지금 당장 지옥에서 점프하여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그대에게 달렸다.
그대는 지옥을 택할 수도 있고, 낙원을 택할 수도 있다.
지옥은 손쉽게 얻어진다. 그러나 낙원은 상당한 노력을 요구한다.
불굴의 인내와 결단력이 있어야 낙원에 들어갈 수있다.
지옥은 그대가 지금처럼 무의식 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낙원은 그대 자신을 초월해야 함을 의미한다.
주의 깊은 의식으로 주시하라. 명상하라.
그러면 어느 날엔가 햇살 찬란한 정상에서 그대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해방이고 모크샤이다. 이것이 니르바나이다.
에고가 사라지고 신이 탄생한다.
법구경 소개 |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원래의 책이름은 빠알리어로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또는 산스크리스트어로는 다르마파다 (Dharmapada 법구경)라고 한다.
그 뜻은 오늘날의 말로 '가르침의 조각들' 또는 '진리의 길' '진리의 말씀'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고 그것은 다시 '진리'라고 표현될 수 있고,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
그리고 법구경에는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 계실 때에 여러 북인도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침을 모았느냐, 어떻게 시들을 모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경전들이 있다.
그리고 경전들 가운데는 같은 경이라도 시들의 숫자나 해설이 차이가 나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빠알리 법구경은 부처님 께서 살던 당대 (B.C 6세기) 인도의 언어였던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자기나라의 문자로 표기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는 가장 간략한 판본이다.
...
이 법구경은 주제에 따라 26품으로 나뉘어 423개의 시들을 포함하는 시선집이다.
법구경-담마파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해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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